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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이스보이 슬립스 후기(스포)

하루콩콩 2023. 4. 8.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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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보이 슬립스]는 1990년 캐나다라는 낯선 공간으로 이민 간 엄마 '소영'과 아들 '동현'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다. 이방인들이 그러하듯 동현은 낯선 이국땅에서 한국인과 캐나다인 어느쪽에도 속하지 못한채 정체성의 방황을 겪는다. 등교첫날, 김밥을 도시락으로 들고 갔던 그 아이는 김밥을 버리고 탈색을 하고 푸른색 렌즈를 끼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재우려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껍데기를 아무리 두텁게 두르고 억눌러봐도 속알맹이는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동현은 엄마와의 한국 여행을 통해 잠들어 있던 라이스보이의 정체성을 깨운다. 영화를 돌이켜보면 엄마 소영은 잠들어 있던 라이스보이의 정체성을 계속 깨우려던 인물이었던것 같다. 동현이를 계속 깨우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동현은 살면서 한번도 만나본적 없었던 할아버지,할머니,작은 아버지를 만나는데, 동현과 절친인 캐나다 친구와 있을때보다도 평온한 표정을 짓는건 내 생각만은 아닐 것 같다. 탈색한 머리를 잘라내고 삼촌과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 렌즈를 소실하고 안경을 되찾은 그의 표정은 영화의 그 어느때보다 편안하고 더욱 '그'다워 보였다. 마지막 장면도 흥미로웠다. 자신이 산으로 올라가는 의도를 알고 있음에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아들이 걱정되어 솔잎을 뿌려둔 고려장 설화 속 어머니의 모습과 동현에게 엎혀 산을 올라가며 본인이 죽고난 뒤의 아들에 대한 걱정을 산길에 뿌려둔 소영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한인 2세들은 정체성의 문제를 많이 겪는듯 하다. 민족 정체성과 관련된 갈등과 고민을 여러 매체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사실이 다양성의 존중이 가야할 길이 아직 멀어보인다는 뜻 같기도 하다. 다양성이 충분히 존중되고 그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라면 소수자가 겪는 정체성의 간극이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며 몇번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리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소영이 안쓰러워서 눈물을 흘렸고, 낯선 땅에서 발버둥쳐도 섞이지 못하는 동현의 모습이 안쓰러워 또 눈물을 훔쳤다. 오래간만에 타인의 삶을 깊이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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