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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리덤라이터스다이어리 감상후기(스포)

하루콩콩 2020. 3. 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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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제목이 왜 The freedom writers diary인지 궁금하다면 결말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영화는 소위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아이들을 대상으로 에린그루윌이 수업을 맡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아이들중 아무도 자신의 수업에 관심 없는 모습에 지쳐가던 에린그루윌은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교육해야 할 것은 책 속의 내용이 아님을 깨닫는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수업의 내용을 전환해 보는데(일기 쓰기,홀로코스트 박물관체험,선게임)
나는 일기 쓰기 방법을 통해 진행했던 수업내용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나는  감히 그들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던 에린 그루윌의 표정이 가장 인상 깊었다. 
에린 그루윌은 아이들의 기억을 일기로 담아내는 수업을 함으로써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시도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타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저 그 사람의 단면적인 행동과 생각을 통해 타인의 정체성을 자신의 펜스 안에 무의식적으로 가둬놓으려고 한다.
아이들을 대했던 사람들 역시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아이들의 거친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면 어른들의 행동은 에린그루윌 처럼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일기를 통해 아이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느끼며 치유하는 수업으로 방향성을 잡고 이끌어 나갔던 그녀는 반면 남편 교육해야 할 것은 삶은 단면적으로 관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혹은 방관하는 태도였을 수도 있겠다.
가족이란 이유로 그녀의 존재의미를 입증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가족이란 존재의미를 묻지 않고도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경계선이라고 착각하고  태만하지 않았을까.
그 결과 아이들의 삶을 변혁시키기 위해 했던 노력은 가장 가까이 인접했던 남편을 잃게 되는 계기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어쩌면 가족이란 의미 역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할 수 있겠다. 너무 근접하게 마주함으로써 상대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고 부분적인 면모만 보며 판단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
장님들이 코끼리의 각 부분을 만지며 코끼리의 모습은 이렇다 단정 지어버렸던 얘기처럼 오히려 가까이 있음이 전체적인 부분을 느낄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남편과 에린그루윌은 서로 전체적으로 담아낼 수 없었던 한계점에 맞닥뜨리고 극복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은 라인 게임을 통해 선을 희미하게 볼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암묵적인 선을 규정하고 그 선 안의 자신을 존재 이유라 믿으며 다른 색깔을 가진 구역을 적이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라인 게임을 통해 그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출발을 한다 .
그 보이지 않는 선은 거시적으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가 내포되어 있다. 
언어를 규정함으로써 소통하는 기회가 생기는 동시에 규정된 언어 속사고안에 갇히는 것처럼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는 인간에게 소속감을 주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국가,이념이라는 틀 안에서 다름을 배척하고 적대감을 안겨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민족주의 ,인종주의와 같은 집단의 프레임을 만드는 사상들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우월성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드러내게 하며 그것을 합리화한다.
보이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제한하던 아이들은 선과 직접 마주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선을 양측을 가로막는 벽의 역할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선을 기준으로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는 서로 발견하고 유대감을 느낀다.
유대감은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변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성질이다.
마주하던 라인 앞에서 상대를 들여다보며 동질감을 느끼며 위로를 얻을 수 있었고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통해 폭력적인 이념과 싸웠던 사람들의 삶에 유대감을 느끼며 본인의 삶 역시 한발 더 내디딜 수 있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
단지 몇십 명 밖에 없는 반이지만 그 안에는 세계가 존재한다.
유대인의 메타이미지를 코 큰 갱이라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홀로코스트가 존재하고
국가가 국경선을 규정하고 그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선 안에서 명목상 자기 것을 지킨다는 사실상 변명인 전쟁이 존재하며
치열한 현실과 조우하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이 공존한다.
하지만 그들은 에린그루윌의 진심을 통해 보이지 않는 벽을 무너뜨리고 서로 공감하고 공감으로 말미암은 관용을 보여줌으로써 상호 간의 상처를 치유한다..
작은 교실에서 보여준 기적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이상적으로 바라봐야 할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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