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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싯다르타 - 헤르만헤세

하루콩콩 2023. 3. 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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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자신의 가슴속에는 아무런 기쁨도 없었다. 꿈〔夢想〕이, 끊임없는 사념(思念)이 그를 향해 강물에서 흘러나왔고,밤에 뜨는 별에서 반짝여 왔고, 햇빛에서 녹아 나왔다.
 
각자가 지닌 자아의 속, 가장 깊은 심부, 불멸하는 마음속이 아닌 다른 어디서 아트만을 찾을 것인
 
모든 것은 거짓이었다. 모든 것은 악취가 났다. 거짓의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마치 의미 있고 행복하며
아름다운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보증할 수 없이 썩어 없어질 것이었다. 세상은 쓰디쓴 맛이었다. 인생은 번뇌였다.
 
갈증에서, 욕망에서, 꿈에서, 기쁨과 슬픔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자아(自我)를 벗어나는 것, 텅 빈 마음에서 안식을 찾는 것, 자아를 벗어난 사유(思惟) 가운데서 기적을 만나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였다. 자아 일체가 초극되고 소멸되었을 때에,
가슴속의 모든 욕구와 충동이 침묵할 때에, 비로소 가장 궁극의 것, 이미 자아가 아닌 본질 속의 가장 심부의 것, 위대한 비밀이 깨어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말을 위한 논쟁을 경계하시오. 의견 자체에는 아무런 비중도 없는 것이오. 그것은 아름다울 수도 추할 수도 있고, 지혜로울 수도 어리석을 수도 있소. 누구라도 그 의견에 집착할 수도 비난할 수도
있는 것이오.
 
나는 한 인간을 보았다. 그의 앞에서는 스스로 두 눈을 내리뜨지 않을 수 없는 유일한 인간을 보았다. 다른 어느 누구의 앞에서도 나는 내 눈을 내리뜨지 않으리라. 다른 어떤 사람도, 다른 어떤 가르침도 나를 유혹하지 못하리라. 이 유일한 인간 붓다의 가르침도 나를 유혹하지 못했으니
 
푸른 것은 푸른 것이었고 강물은 강물이었다. 그리고 비록 푸른 것 속에, 강물 속에, 싯다르타 속에, 유일한 신적(神的)인 무엇이 감추어져 살아
있다 해도, 여기 노란빛, 여기 푸른빛, 저 하늘, 저 숲, 여기 싯다르타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곧 신적인 것의 방식이요 의미였다. 의미와 본질은 사물의 뒤쪽 어디엔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에, 만물 속에 존재했다.
 
붓다의 보물과 비밀은 그 가르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붓다 자신이 각성의 순간에 체험했던 것,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르쳐 전달할 수 없는 것에 있다고 한 말
 
나는 사고(思考)할 수 있소. 나는 기다릴 수 있소. 나는 금식할 수 있소.”
“그 밖에는 또 무엇을?”
“없소. 하지만 나는 또 시를 지을 수 있소.
 
싯다르타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사고하며, 금식할 뿐이오. 그렇지만 물을 꿰뚫는 돌멩이처럼 세계의 사물을 꿰뚫고 지나가지요.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서 말이오. 그는 끌리는 대로 그곳에 몸을 맡기지요. 그의 목표가 그를 끌어당기고 있소. 왜냐하면 그는 목표에 거스르는 어떠한 것도 자기의 영혼
속에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오.
 
상인은 중요한 편지와 계약 서류를 작성하는 일을 그에게 맡겼고 모든 중요한 사무를 그와 의논하는 데 길이 들었다. 상인은 곧 알게 되었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쌀과 양털, 항해와 장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그의 손은 행운의 손이라는 것을. 또한 침착하고 초연한 마음가짐에서, 또한 상대편에게 귀를 기울이고 꿰뚫어 보는 기술에서 자기를 훨씬 넘어선다는 것을. 그는 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싯다르타는 언제든지, 장사를 가지고 유희를 하는 것같이 보일 뿐 결코 거기에 몰입하거나 지배받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실패를 겁내지 않고 손해를 개의치 않습니다.”
 
세월은 흘러갔다. 싯다르타는 안일한 생활에 휩싸여 세월의 흐름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는 부자가 되었다. 벌써부터 자기 소유의 집을 갖게 되었고, 하인들을 부렸고, 교외의 강변에는 별장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해서 돈과 조언(助言)이 필요할 때면 그를 찾아왔다. 하지만 카마라를 빼놓고는 어느 누구도 그와 친하지 못했다.
일찍이 그가 청년의 절정기에,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나서 고빈다와 작별한 후 며칠 동안 체험했던 그 높고 투명한 각성, 긴장된 기대감, 가르침도 스승도 떠나 있던 오만한 독존(獨存), 자신의 내심에서 신의 음성을 들으려던 겸허한 마음의 태세는 점점 추억이 되어버리고 덧없는 옛일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가까이에서 솟았던, 일찍이 자기 안에서 솟아오르던 성스러운 샘물은 멀리 가냘프게 그 울림을 전해올 뿐이었다.
 
마치 죽어가는 나무 밑동에 습기가 스며들어 서서히 습기로 가득 차서 썩어버리는 것과 같이, 세속적인 것과 타성이 그의 영혼 속으로
스며들어 서서히 그의 영혼을 가득 채우고 그를 무겁게 하여 피곤하게 하고 결국 잠들게 했다. 그 대신 그의 관능은 생생하게 살아 많이 배우고 많은 체험을 했다.
 
재산이 늘어감에 따라 서서히 싯다르타 자신이 소인배의 요소를, 철부지 같고 소심한 요소를 지니기에 이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들을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들과 닮아가면 갈수록 더욱 그들을 부러워했다. 자기가 못 가졌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를, 그들이 자기네의 인생에 부여할 수 있는 중대성을, 기쁨과 불안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그들이 영원히 지니는 사랑의 감정의 안타까우나 달콤한 행복을 부러워했다.
 
그의 심장 속에는 죽음이, 가슴속에는 공포가 느껴져 왔다. 그는 그렇게 앉아서 자기 내부에서 무엇인가 죽어가고 있음을, 시들어 종말을 향해 가고 있음을 느꼈다.
 
높은 목표도 없이, 갈망도 없이, 비약도 없이, 사소한 쾌락에 만족하며, 그러면서도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이 살며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너무나 많은 지식, 너무나 많은 성구(聖句), 너무나 많은 제사의 규범, 너무나 지나친 금욕, 너무나 지나친 실천과 노력이 자아를 죽이는 데 방해가 되었다! 그는 오만에 가득 차 있었던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소리와 모습이 그렇게 힘차고 아름다운 적이 없었다. 마치 이 강물이 어떤 특별한 무엇을, 그가 아직 알지 못하고 그를 아직도 기다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강물 속에 싯다르타는 빠져 죽으려 했고, 과연 시달리고 절망에 빠진 옛 싯다르타는 강물 속에서
죽어버렸다.
 
바수데바는 퍽 주의 깊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모든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했다. 싯다르타의 내력과 어린 시절, 모든 수학(修學), 모든 추구, 모든 기쁨, 모든 고통을. 경청할 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뱃사공이 지닌 미덕 중 가장 큰 것이었다. 그는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비록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말하고 있는 싯다르타는 느꼈다
 
그는 강에게서 끊임없이 배웠다. 그는 강에게서 무엇보다도 듣는 법을, 조용한 마음으로, 영혼을 열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열정도, 욕망도, 비판도, 의견도
없이 경청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나서 나의 삶을 바라보니, 그것 역시 한 줄기 강이었습니다. 소년 싯다르타는 한낱 그림자를 통해서만 어른 싯다르타, 노인 싯다르타와 떨어져 있을 뿐이요, 현실을 통해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싯다르타의 전생(前生)은 결코 과거가 아니었고, 그의 죽음과 범(梵)으로의 귀환도 미래가 아니지요. 그 어느 것도 과거에 있던 것이 없고, 그 어느 것도 미래에 있을 것이 없는 겁니다. 모든
것은 현재 있으며, 모든 것은 본질과 현존을 지닐 뿐이지요.
 
비로소 싯다르타는 아들로 인하여 행복과 평화를 얻은 게 아니라 고통과 걱정을 얻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아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아들이 없이 행복하고 기뻤던 때보다도 사랑의 고통과 걱정이 있는 지금이 한결 좋게 느껴졌다.
 
스스로 삶을 살고, 스스로 업보를 짊어지고, 스스로 쓰디쓴 잔을 마시고, 스스로 자기의 길을 찾으려는 것을, 어떤 아버지가, 어떤 스승이 막을 수 있을까요?
 
사실상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완전히 잃어버리든가, 희생하든가, 자기를 망각하고 타인 때문에 사랑이라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럴 수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그런 점이야말로 자기를 다른 소인배들과 구별시키는 커다란 차이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 아들이 나타난 다음부터 싯다르타까지도 완전히 한낱 소인이 되어버렸다. 한 인간 때문에 괴로워하고, 한 인간을 사랑하며, 한 인간으로 인해 절망하고, 하나의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어버렸다. 이제 뒤늦게 그도 일생에 한 번 가장 강렬하고 야릇한 열정을 느꼈고, 그 열정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겪었다. 처참하도록 괴로움을 겪었다. 그런데도 그는 행복했다. 무엇인가 새로워지고,
무엇인가 풍부해진 느낌이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이 살아온 역사에 귀 기울이며 그는 오랫동안 서 있었다. 오랫동안 서서 승려들을 바라보며, 승려들의 자리에서 젊은 싯다르타와 젊은 카마라가 무성한 나무 밑을 거니는 모습을 보았다. 카마라에게 환대를 받던 자기의 모습을, 카마라에게 최초의 키스를 받던 자기의 모습을, 오만과 경멸의 마음으로 브라만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긍지와 희망을 가지고 세속적 생활을 시작하던 자기의 모습을 그는 분명하게 보았다. 그는 카마스바미를 보았다. 하인들과 떠들썩한 연회와 도박꾼들과
악사(樂士)들을 보았고, 새장 안에서 울던 카마라의 새를 보았다.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체험하며 윤회를 호흡했고, 다시 한번 늙고 피로해졌으며, 다시금 혐오감을 느꼈고, 다시금 자신을 소멸시켜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꼈고, 마침내 다시금 신성한 “옴”의 힘을 입어 회복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이 이전처럼 생소하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고(思考)와 분별에 의해서가 아니고 오로지 충동과 욕망의 지배를 받는 그들의 생활을 이해했고 그 생활을 함께했다. 그는 자신이 그들과 같음을 느꼈다.
 
사고(思考)하는 지자(智者)가 그들보다
나은 점이란 단 한 가지, 실로 극히 적은 일, 의식하고 있다는 것, 모든 생의 단일성을 의식하여 사유(思惟)한다는 것뿐, 그 밖의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곧잘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대체 이 지식, 이 사상이라는 것이 그토록 높이 평가되어도 좋은 것인가? 이 또한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소인들의 어린애 장난이 아닐까? 이 한 가지 외에는 모든 면에서 세상 사람들도 현자에 못지 않았고, 때로는 현자보다 훨씬 우월했다
 
동경(憧憬)의 탄식과
지자(智者)의 웃음소리, 분노의 외침과 죽어가는 자의 신음 소리, 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고 모든 것이 뒤섞여 짜이고 맺어져 천 번 만 번 뒤얽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묶여서, 모든 소리, 모든 목표, 모든 갈망, 모든 번뇌, 모든 쾌락, 모든 선과 모든 악,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세상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서 생성의 강이요, 삶의 음악이었다.
 
모든 진리는 그 반면(反面)도 똑같이 진리라는 것일세! 따라서 진리는 그것이 단면적일 때에만 발음이 되어 나오고 언어로 쌀 수 있네. 사색할 수 있고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단면적인 것이요, 반쪽이요, 전체가 못 되고 원(圓)이 못 되고 단일의 것이 못 되네. 그러니까 지존 고타마께서 세계에 대하여 가르치실 때에, 세계를 윤회와 열반, 미망(迷妄)과 진실, 번뇌와 해탈로 나눌 수밖에 없었던 걸세
 
어느 인간이나 완전히 성자이거나 완전히 죄인일 수는 없지. 그것이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시간이란 실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망에 빠져 있는 까닭이네. 시간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닐세, 고빈다.
나는 그것을 문득 체험했지. 이렇게 시간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세계와 영원 사이의, 번뇌와 행복 사이의, 악과 선 사이의 틈〔間隔〕도 또한 미망일 것일세.”
 
모든 것은 완전하고, 모든 것은 범(梵)이라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모름지기 존재하는 것은 선으로 보이며, 죽음은 삶으로, 죄악은 성스러운
것으로, 지혜로움은 어리석음으로 보이네. 모든 것은 그래야만 하며 모든 것은 다만 나의 동의(同意), 나의 호의, 나의 다정한 이해를 요구할 뿐이지. 그러니 내게 모든 것은 선이며, 그것은 나를 고무시켜주되 나를 해하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네.
 
“그것 또한 내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라네. 물건이 만약 환영이라면, 그때에는 나 또한 환영일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나 나와 동류(同類)일 것이 아닌가. 이 점이야말로 그것들이 내게 그토록 사랑스럽고 존경할 만하게 보이는 까닭이라네.
 
일찍이 그의 생애 동안 그가 사랑해온 모든 것을, 일찍이 그의 생애에서 가치 있고 성스러웠던 모든 것을 상기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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