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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프로이트의 의자 - 정도언

하루콩콩 2023. 3. 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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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이 의식이라면 무의식의 세계인 강남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다리를 통해 전의식으로 비유되는 한강을 건너와야 합니다.
 
이드는 욕망의 대변자입니다. 자아는 중재자입니다. 초자아는 자아 이상ego ideal, 도덕, 윤리, 양심의 대변자입니다. 이드는 욕구를 주장하고, 초자아는 금지된 일을 못하게 막아서거나 이상을 추구하고, 자아는 타협점을 찾습니다.
 
타협성을 이끌어내는 자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힘 있는 자아는 고통스러운 일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자아의 힘을 키워놓아야 합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욕동(본능적 욕구의 움직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삶의 욕동인 리비도Libido(성 에너지)와 죽음의 욕동인 타나토스Thanatos(공격성, 공격적 에너지)입니다.
 
모든 영화는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 본능을 예술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결과물입니다.
 

 

남에 대한 배려가 지나친 사람에게는 남에게 잔인하게 대하고 싶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지나치게 깔끔한 사람의 마음에는 아주 더럽게 살고 싶은 욕구가 숨겨져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반전주의자의 마음에는 엄청나게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에너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타주의의 뒤에는 이기주의가, 부모에 대한 복종의 밑에는 반항심이, 순결을 지키려는 마음 아래에는 성적 욕구가 숨어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완전히 검거나 완전히 흰 ‘선명한’ 인생은 없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에는 검은색과 흰색의 중간인 여러 채도의 회색들이 필요합니다. 통합되지 않고 대립된 상태로 저장된 선명한 이미지들만 마음에 지니고 있으면 세상이 온통 갈등 구조로 보여 살기가 힘들어집니다. 내 마음이 언제나 싸움터라고 생각된다면 자신이 세상을 몇 가지 색으로 구분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색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이 우리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행복 추구 문화’는 슬픔이라는 정상적 감정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하게 우리를 억압합니다. 슬픔과 고통을 느낄 줄 알아야 행복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와 헤어진 후 슬프고 울적한 기분은 자연스럽게 풀어야 합니다. 슬프고 울적한 기분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술이나 다른 무엇인가에 무리하게 기대어 그 기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행복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은 역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른이 되기를 두려워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공포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을 뜻하므로 아이같이 살려고 부모에게, 사회에 반항합니다. 나는 반항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그 대신 내 성격이 성숙해질 기회를 잃습니다.
 
내 자아와 내 초자아를 살펴보세요. 자아가 너무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초자아가 너무 강해져서 내 스스로 나를 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는 사람을 자폐적이라고 합니다. 자폐적이란 현실과 담을 쌓고 자기의 내면세계에 들어앉아 있다는 말입니다.
 
애착만으로 물든 관계는 멀리 못 갑니다. 고독이 없는 성숙은 가볍습니다.
 
애매하게 느껴지는 불편이나 공허가 ‘진짜 나’로 나를 이끄는 단서입니다.
 
우리는 주관적 세계에 갇혀 삽니다. 우리 마음은 상자 속의 다람쥐입니다. 상자 속에 갇혀 있는 다람쥐는 바로 옆에 펼쳐져 있는 넓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생각보다는 안에 갇혀, 제공되는 먹이를 먹고 바퀴를 수없이 돌리며 세월을 보냅니다. 과거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보는 눈을 변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정신분석이 하는 일입니다. 마음속의 그 다람쥐가 자신이 쓸데없이 반복하고 있는 것을 돌아보고 새 경험을 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다람쥐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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